부재하는 이들을 향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살면서 우리는 몇 번의 ‘작별’을 진심으로 겪게 될까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소중했던 순간의 끝, 혹은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묻은 이야기들까지.
어쩌면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작별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모든 것과 작별할 수 있는 걸까요?
어떤 기억은, 어떤 감정은, 어떤 사람은 마치 눈송이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마음속에 영원히 녹지 않고 남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를 이루는 일부가 되지요.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질문을, 시리고 아픈 역사와 한 여인의 여정을 통해 제게 던졌습니다.
책장을 처음 펼쳤을 때, 마치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얗게 눈이 덮인 제주도의 풍경. 그리고 그 아래, 말없이 묻혀 있는 깊고 오래된 기억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이라는 우리 역사 속의 비극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단순한 사건 묘사를 넘어서, 그날의 아픔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조용히 따라갑니다.
주인공 인선은 친구 경하의 부탁으로 제주로 향하고, 그곳에서 어머니의 과거와 얽힌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여정은 마치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떠나보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애써 외면했던 후회의 조각들.
인물들의 고통은 결코 낯설지 않았고, 그래서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한강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도 담담한 문장들은 그 아픔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감정을 과잉하지 않으면서도 잔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문장들.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 같으면서도 단단하게 버티는 언어들.
그런 문장들은 슬픔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켜내는 인물들의 내면을 선명하게 비춰주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여러 번 숨을 골라야 했습니다.
과거의 참혹한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사람들의 강인함이 있었습니다.
기억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서로를 보듬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려는 모습들.
그 안에서 저는 삶을 견뎌내는 또 하나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깊이 새겨진 문장이 있습니다.
인물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삶의 본질을 꿰뚫는 문장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저는 잠시 숨을 멈춘 듯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 견뎌낸다는 것은 결국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열망이나, 반드시 돌아가 껴안아야 할 소중한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 문장이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질문은 단지 소설 속 인물들의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수많은 고비를 지나온 우리 각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지닌 존엄성과 살아내려는 의지를 담은 작품입니다.
죽음과 부재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작별해야 할까요.
혹은 어떤 기억은 끝내 작별하지 못한 채, 우리 안에 남아 우리를 만들어가는 걸까요.
소설은 이 질문들을, 눈 덮인 제주를 배경으로 조용하면서도 처연하게,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혹시 당신도 마음속에 녹지 않는 눈송이 같은 기억을 품고 있다면, 혹은 삶의 부재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차가운 계절의 끝에서, 당신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작별하지 않는 것들의 온도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온기가 앞으로의 삶을 이끌어갈, 작지만 단단한 불꽃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책을 덮으며, 저는 제 마음속에 작별하지 않는 모든 기억과 사람들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고, 그 기억들이 앞으로의 저를 만들어갈 것임을 믿으며.
– 책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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