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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일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by 책통지 2023.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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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를 만나기만 하면 그가 요술쟁이처럼 자신의 모든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줄 거라 기대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이들은 실제로 의사를 몇 차례 만나 본 후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의사가 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한없이 내 얘기를 듣기만 하고......, "

 

그들은 정신분석가가 내가 의사처럼 금방 진단을 내리고 곧바로 처방해서 일목요연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즉각 얻지 못하면 더욱 잘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2년 동안 13명의 의사를 순례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분석 과정 자체가 생을 대신하게 되어 한 의사에게 13년 동안 매달려 있기도 합니다.

 

 불교 수행에 '경전 공부 10년, 참 선수행 10년, 만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의 규범화된 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깨달음으로 가는 세 단계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일단 경전 공부를 폭넓게 해서 세상과 인간에 대해 수평적 지식과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가지 화두를 잡고 참선 수행에 들어가는 거겠지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 없이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는 것은 설계도 없이 '삽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참선 수행은 인간과 세상을 깊이, 직관과 통찰력을 동원해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과정일 겁니다.

 

거기서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을 읽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고 코페르니쿠스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겠지요.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는 이제 배낭을 메고 세상을 두루 편력하러 떠납니다.

 

 

2023.5.21 일요일

 

 

이른바 만행이지요. 참선 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내면화하고 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세상도 새롭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만행이 끝나면 본래의 공동체로 돌아가 그가 얻은 지혜를 구성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회향 단계가 남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도 불교 수행과 비슷한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신분석가가 되려는 이들의 학습 과정도 스님들의 수행 과정과 비슷해 보입니다.

 

분석가가 되려는 이들은 우선 관련 분야의 지식을 폭넓게 습득합니다.

 

그런 다음 스승이나 전문가와 함께 자신을 분석하는 시간을 필수적으로 갖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를 잘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정신분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 역시 습득한 지식과 자기 분석을 통해 얻은 통찰을 동시대인인 피분석자에게 나누어 줍니다.

 

정신분석가들은 피분석 자가 정신분석에 대한 지식이 없는 편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어설픈 지식을 가지고 있든 치밀한 지식을 가지고 있든 그것이 방어기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분석 치료에 임하는 이들이 최소한 그 작업이 어떻게 돌아가는 시스템인지 큰 틀을 이해한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 2년 동안 13명의 분석가를 순회하거나, 13년 동안 한 분석가에게 매달려 있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스님들 역시 경전 공부를 미리 해두어야 참선 수행 중에 만나는 신기하고 고통스러운 체험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야 알아두었으면 하는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우선 자신의 의존성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앞의 말대로 "의사가 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 사실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꺼내보고 분석에 들어갈 때 의사는 다만 큰 틀을 잡아주고 길을 안내하고 적절한 시기에 핵심을 짚어주는 일을 할 뿐입니다.

 

마음 깊은 곳을 파내려 가 내면의 자신,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일은 본인이 주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가장 잘 감지할 수 있는 사람, 스스로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도 오직 자신뿐입니다.

 

 힘들게 용기를 내어 정신분석 치료를 받도록 했으면 도중에 포기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치료를 중단할 때 많은 피분석자 들은 대체로 그 책임을 의사에게 돌립니다.

 

의사가 냉정하다, 이기적이다, 돈만 밝힌다 등등의 이유를 댑니다.

 

어떤 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의사가 너무 무식해 나보다도 아는 게 없어."

하지만 생각에 보세요. 특정 분야의 공부를 10년 이상 하는 사람이 어떻게 비전문가 보다 무식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사를 비난하면서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치료 과정에서 만나는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행위입니다.

 

무엇보다, 의사를 비난하는 바로 그 지점에 저마다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시작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정신분석학에 관한 약간의 지식을 방어기지로 사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심리학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나면 자칫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제 웬만큼 자신의 무의식을 파악했고, 문제의 원인을 진단했으므로 남은 일은 삶 속에서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식을 안다는 것과 실제 치료는 경전 공부와 참 선수행 의 단계처럼 전혀 별개의 영역입니다.

 

요리법을 읽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지 않고 의학 개론서를 읽는다고 해서 복통이 가라앉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는 자주 연금술에 비유됩니다.

 

16세기 연금술사 파라켈수스는 모든 종류의 물질을 수은, 유황, 소금으로 환원될 수 있으며, 이 세 가지 물질을 어떤 비율로 결합하느냐에 황금을 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 정신도 이와 같아서 원래 타고나는 충동인 성적 욕망과 공격성, 거기에서 파생되는 분노와 불안 등을 어떻게 보살피고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집니다.

 

한 인간이 금이 될 수도 있고, 구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최초의 연금술사는 엄마입니다.

생애 초기에 받는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 엄마와 나는 정서적 교감에 에 따라 아기의 정신은 특정한 모양으로 탄생합니다.

 

정신분석은 두 번째 연금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연금술에서 우리가 수동적이고 무력한 상태였다면 이제 성인이 되어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두 번째 연금술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간 정신이 연금술의 결과라고 할 때 기억하실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 질료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내면이나 사랑괴 분노, 불안과 공포, 질투와 시기, 냉단과 관용 등의 요소가 존재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합성하고 어떤 비율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격이나 정체성이 빚어집니다.

 

 또 하나는 어떤 연금술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연금술사도 '꿈의 황금'을 만들지 못했듯이 인간 정신에도 '정상'의 개념은 없습니다.

 

내면의 갈등과 긴장을 조절하고, 중단되었던 발달을 계속하며, 생의 자율성과 안정감을 획득해 나가는 삶의 가정이 있을 뿐입니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에 있는 두 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50회 안팎의 단기 치료와 주 2회 이상 실시하여 2년 이상 진행되는 장기 치료입니다.

 

단기 치료는 특정한 문제가 있을 때 그 증상이 회복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의료보험이 영향을 받는 미국의 의료 현실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는 장기 치료를 말하는 것으로, 성격 구조를 바꾸고 삶을 총체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5~6년까지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5~6년이란 한 인간의 탄생에서 기본적인 성격 구조를 형성하는 시간과 동일한 기간입니다.

 

 일단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분석해 본 사람은 그 작업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모든 경험과 관계를 분석적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뒤늦게 새로운 통찰이나 자각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그런 현상을 '잔존 효과'라고 부릅니다.

 

개인이 혼자서 스스로를 분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일단 분석 치료 단기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정에 의해 작업이 중단되더라도 혼자서 스스로에 대한 분석 작업(장기 치료)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의식적으로 경험과 행동을 분석하면서, 여러 해에 걸쳐 전통적 분석 치료가 목표를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치료비나 시간문제 때문에 정신분석 작업을 혼자서는 할 수 없는지 묻는 이들에게도 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천 개의 공감/김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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