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화 껍질 밖으로 나오려면 다른 사람들의 문화 껍질에 대한 정보와 지식 그 이상이 요구된다.
즉 다른 문화가 우리를 그들의 문화 공간으로 끌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방법은 '듣기'인데 중용적 자세와 객관적 위치에서 듣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야기에 동참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야기에 동참한다는 것은 다른 문화의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려는 협력적이고 감정이입적인 자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감정이입이란 이해를 위해 '듣는' 것 그 이상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에 반응하기 위한 테크닉은 더더욱 아니다.
감정이입이란 자신을 지금 당신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삶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고, 자신을 그 이야기에 밀어 넣는 것이다.
이것은 그 이야기에 자신을 관련시키는 것이다.
감정이입 없이는 다른 사람과의 진솔한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인식적 공간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잘 모르는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히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그 주체가 우리 자신을 자신들의 삶의 공간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남자가 자기 집 현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무엇인가 찾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을 본 보행자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 "집 열쇠를 잃어버려서 그걸 찾고 있는 중입니다."
보행인: "오라~ 내가 도와줄 테니 대충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말해 보시오."
남자: "집안에서 잊어버렸소."
보행인: " 아니, 그런데 왜 엉뚱하게 집 밖에서 열쇠를 찾고 있는 거요?"
남자: "왜냐하면 여기서 훨씬 더 잘 보이니까요."
우리는 문화 교류적 대화의 열쇠를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의 어둡고 아픈 이야기에 들어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의 경험을 경험하고자 하는 자발성이 없으면 우리는 감정이입이란 말 자체를 할 수 없다.
편견 알아차리기
다른 사람의 문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은 대부분 선지식과 편견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문화 교류적 대화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편견에 대해 가능한 한 정직해야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고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정직해야 한다.
정직함은 우리가 우리의 편견을 안아차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진정할 '알아차리기'는 당신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당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말이다.
편견은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목회자의 자녀는 버릇이 없다, " "정치가 아버지를 둔 자녀는 반항적인 아이가 되는 것 이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흑인들 가정에는 자녀 규율이라는 것은 없다.
두 번째로 중요한 편견 '알아차리기'는 어디에든 사회. 문화적 의사소통 방법이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고 편견을 알아차리기 위한 대화다.
편견 알아차리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편견을 '입 밖으로 내기' 또한 중요한 과제다.
이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잘못된 이해를 교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여행길의 동반자: 나 레이티브 상담/J. 제일 뮬러. 김번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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