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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관계를 무너뜨리는 선의의 거짓말

by 책통지 2023.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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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사기그릇과 같다


 내 아내는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여성이다. 예쁘게 보이는 걸 좋아하고 나도 아내가 예쁘게 보이는 게 좋다. 정말로 저녁에 같이 외출하려면 일단 아내가 화장실에 한 시간 동안 화장과 머리, 옷 등 모든 단장을 마치고 나온 다음, 나한테 "나 어때?"라고 물어봐야 한다. 보통은 눈부시게 예쁘다. 하지만 가끔 이건 아니다 싶을 때도 있다.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시도했을 때 그랬고 밀레노 출신의 대담한 패션 디자이너가 '아방가르드하다'
고 평가한 부추를 신었을 때도 그랬다. 그걸 시도한 이유가 무엇이던 그건 정말 아니었다.

 내가 그건 아니라고 하면, 아내는 버럭 화를 낸다. 약속에 30분 늦더라도 모든 걸 다시 하기 위해 옷장이나 화장실로 쿵쿵거리며 가는 동안 육두문자를 마구 내뱉는데, 때로는 아예 대놓고 나를 향해 툭툭 내던질 때도 있다. 남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보통 여자친구나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왜냐고? 난 항상 기분 좋게 지내는 것보다 정직이 관계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내 생각을 검열하지 않을 거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 솔직한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동의하는 사람과 결혼했다. 물론, 아내가 나한테 헛소리하지 말라고 타박할 때도 있는데, 그게 배우자로서 내 아내의 최대 장점이다. 때로는 아내의 자존심이 상해 툴툴거리며 억지를 부리기도 하지만, 몇 시간만 지나면 난 댓 발은 빠른 나온 입으로 아내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하곤 한다. 핀잔 듣는 건 싫지만, 아내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관계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자신과 상대를 늘 만족시키는 거라면, 결국에는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가 무너져 내린다. 갈등이 없다면, 신뢰도 있을 수 없다. 갈등은 조건 없이 내 옆에 있는 게 누구인지, 그저 이익 때문에 내 옆에 있는 게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예스를 신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망 판다가 여기 있었다면,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다지고 친밀감을 높이는 데는 고통이 필수라고 말했을 것이다.

 건전한 관계를 지속하려면 두 사람 모두가 '아니' 또는 '안 돼'라는 말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부정이 없다면, 즉 가끔씩 거절을 하지 않는다면, 경계가 무너져서 한 사람의 문제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갈등을 겪는 건 정상일뿐만 아니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 거리낌 없이 논쟁할 수 없다면 그런 관계는 밑바탕에 감언이설과 사탕발림이 깔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서히 치명적인 관계로 치닫게 된다.

 신뢰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까닭은 단순하다. 신뢰가 없다면 관계는 사실상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난 널 사랑한다 하고 너와 함께 하고 싶다고 너를 위해서라면 난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신뢰가 없다. 그런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나를 향한 사랑에 아무런 조건도 마음의 응어리도 없다고 믿을 때 사랑을 느낀다.

 바람이 관계를 파괴하는 건 그 때문이다. 문제는 섹스가 아니라, 섹시의 결과로 파괴된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관계도 무너진다. 이럴 때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신뢰를 회복하든지, 헤어지든지.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배우자가 바람피웠는데, 헤어지기는 싫습니다. 어떻게 하면 배우자를 다시 믿을 수 있을까요? 신뢰가 사라지니 부부 관계가 마치 무거운 짐처럼 감시해야 하는 폭탄처럼 느껴져요. 전처럼 즐겁지가 않네요."

 

 여기서 문제는 바람피우다 걸린 사람들이 상대에게 사과한 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라는 입에 발림 말로 사건을 덮는다는 거다. 마치 바람을 핀 것이 완전히 우연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배우자의 바람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배우자의 가치관과 그 가치관이 배우자를 함께 할 만한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이들은 관계를 이어가는데 급급한 나머지 그와의  관계가 자기 자존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다는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이 바람을 피우는 건 그들에게는 관계보다 중요한 뭔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위에 서고 싶은 권력욕이나 섹스를 통한 자기 과시 때문일 수도 있고, 이길 수 없는 충동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뭐든 간에, 바람둥이 가치관은 건전한 관계는 맞지 않는다.
바람둥이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또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나 봐, 술김에 그런 거야"와 같은 뻔한 대사를 읊는다면 그는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인 깊은 자기 인식을 결여한 사람인 것이다.

 바람피운 사람은 '자기 인식 양파'를 벗겨서 어떤 엉터리 가치 때문에 자신이 신뢰를 깼는지 그리고 자신이 아직 관계 가치를 두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요컨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 난 이기적이야. 난 우리 관계보다 내가 더 중요해, 솔직히 말하면, 난 우리 관계에는 신경 안 써." 바람둥이가 이런 엉터리 가치관을 드러내 자기가 그동안 그걸 우선시했다는 점을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그를 신뢰할 수 있을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신뢰할 수 없다면 관계가 나아지거나 달라질 일은 없다.


 깨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또 다른 현실적인 방법은, 바로 실제 행동을 보는 것이다. 누군가 신뢰를 깼을 때는 일단 대화를 하는 게 좋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상대의 행동이 나아지는지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바람피운 사람이 이제는 올바른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지 앞으론 정말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러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실내를 깨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 걸릴 것이다. 게다가 신뢰를 쌓는 동안 일이 꼬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가 자신이 짊어지기로 선택한 투쟁이 무엇인지 분명히 의식해야 한다.

 이 과정은 다른 단계의 불화에도 적용된다. 허물어진 신뢰를 다시 쌓으려면 무조건 다음 단계들을 따라야 한다.

1. 신뢰를 깬 사람이 자신의 어떤 가치관 때문에 불화가 생겼는지를 인정하고 실토한다.

2. 신뢰깬 사람이 오랫동안 일관되게 나아진 모습을 보인다.

 이중 첫 단계가 없으면 화해는 시도 조차 할 수 없다.

 신뢰사기그릇과 같아 처음 깨뜨렸을 때는 조심조심 다시 붙일 수 있다. 하지만 또 한 번 깨뜨렸을 때는 조각조각 깨져서 다시 붙이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여러 번 깨뜨리다 보면 결국엔 다시는 붙일 수 없게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 세상에 깨진 조각과 가루가 너무도 많다

 

 

<신경 끄기 기술>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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