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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부재의 냄새

by 책통지 202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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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호기심과 동경 때문에 철로 변을 걸어 다녔다.

 

대개 읍내에 가는 것이 걷기 코스였는데, 그때는 주로 철둑길을 이용했다.

 

철길 위를 팔 벌려 걷거나 침목을 새며 걸었다.

 

가끔씩 레일의 길을 대고 있으면 아주 희미한 심장 박동처럼 철커덕철커덕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때로는 집에서 훔친 못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레일 위에 올려놓고 철둑 아래로 몸을 숨겼다.

 

기차가 지나갈 때 기차 바퀴에 눌린 못이 화살처럼 사방으로 튀기 때문이다.

 

기차 꼭 무니가 사라질 때쯤이면 뚝 아래 숨긴 몸을 일으켜

 

아이들과 칼날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못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 '못칼'로 낄낄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그 전과도 시들해지면 다시 호주머니에 그 훈장을 집어넣었다.

읍내에 도착할 때쯤이면 그 못칼은 를 시골에 처박혀 사는 곳이 지겨웠던 아이들의

 

위험항 꿈처럼 호주머니를 비집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했다.

 

송파도서관

 

 

 그때 철길을 걸을 때, 내게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껌종이였다.

철로 변에 왜 그렇게 껌종이들이 널려 있는지.


아이들의 상상 속에선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껌을 씹는 것 같았다.

특히 우리에겐 주로 젊은 서울 여자들이 기차 안에서 껌을 씹는 것으로 상상되었다.

언제나 젊은 서울 여자들은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드는 시골 아이들에겐 동경이 대상이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4~ 5 한 년밖에 안 된 아이들이 말이다.

너무나 지루한, 변화가 없는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동네 앞을 지나가는 기차는 언젠가 한 번은 꼭 집어타고 서울로 가야만 하는 욕망의 대상이었다.

철길에 떨어진 그 무수한 껌종이들은

 

바로 그런 손에 잡히지 않는 서울 여자들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부추기는 아스라한 향수 냄새였다.

 

껌종이에 코를 대고 있으면 서울 여자들의 살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우리는 부재를 통해 아름다운 여자들이 사는 서울을 상상했기에,

 

정작 껌보다는 껌종이의 냄새가 좋았던 것이다.

 

 

 

그 외발 소년은 무사히 집에 잘 돌아갔을까/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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