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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단순한 일이라 재미가 없어요

by 책통지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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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단순한 일이라 재미가 없어요

 

 쪽지 사무실에는 방학이나 평일에도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과 어른들이 있다고 합니다. 방학에는 주로 학생들이 많고 평일에는 가끔씩 쪽지를 읽었던 어른들이 오신다고 합니다. 휴가 나온 군인이 찾아와서 하루를 자원봉사하다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지방에서 일부러 휴가를 내어 올라오기도 하고, 시험이 끝난 후 바로 일주일을 자원봉사하는 기간으로 작정하고 일을 도와주러 오는 학생도 있다고 합습니다.

 자원봉사를 결심하게 된 사연이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동기로 찾아오지만 그래도 낯선 곳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하루나 이틀 자신의 시간을 투자한 경험은 그 사람의 평생 동안 남다르게 남아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쪽지 사무실의 자원봉사는 대체로 단순노동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상담 편지에 답장을 하거나 전화 상담을 하시는 분들은 그 일에 맞는 따로 요구되는 자격들이 있기 때문에 자원봉사로 불쑥 나타난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어렵지만 누가 해도 괜찮은 그렇지만 사람의 시간과 손이 필요한 일이 자원봉사들의 몫이 된다고 합니다.

 발송할 봉투에 우표를 붙이는 일 복사된 테이블 재생하기 위해서 자기판 위에서 지우는 일, 지방으로 가는 전화 쪽지 테이프를 하루 불량 100개씩 복사하는 일, 발송할 테이프를 포장하는 일, 책을 정리하는 일, 혹은 상담 편지를 복사해서 주소를 옮겨졌는 일 등이 자원봉사들이 단골로 도와주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노동을 하루 꼬박 몇 시간을 하고 나면 이내 질리고 몸이 뻐근해지면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찾아왔지만 호기심에 한 번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던 사람일수록 일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무척 힘들다'.

'너무 단순한 일이라 재미가 없다'. 등이 자원봉사들의 소감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작은 일에도 도움이 돼서 기뻐요.'
'정말로 수고하시네요. 이렇게 어렵게 하시는 줄 몰랐어요'.

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자원봉사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가끔은 자원봉사자의 인연으로 만났지만, 꼭 직원으로서 일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남미림 씨 같은 경우라고 합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던 남미림 씨는 그 단순한 일을 하겠다고 월차 휴가를 내서 두 번이나 사무실을 찾아온 아가씨라고 합니다. 처음 하루는 일을 참 잘하고 성실한 사람이구나 하는 정도의 이미지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달에 또 월차 휴가를 내서 왔을 때는 함께 일을 거들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평소 직장 생활이 아침 7시부터 저녁 12시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무척 많다고 했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회사가 크다 보니까 분담된 일이 많아서 그렇게라도 일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밤늦게까지라도 일을 하는 것은 나무랄 데 없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회사 생활에서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월차 휴가 하루를 쪽지 사무실에 와서 이렇게 또 단순노동의 하루를 다 맞춰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 때 쪽지를 받았는데 제가 도와드려야지요 하며 당연하게 대답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자원봉사자이지만 아침 7시 집에서 나와서 저희 직원이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여 함께 퇴근하는 마음으로 일을 도왔다고 합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개근상을 받았다는 생활 태도,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6개의 자격증을 따서 상고생으로서 딸 수 있는 자격증은 모두 땄다는 그녀의 이력이 자신이 맡은 일이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고 합니다.

 작은 일에 성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큰 자리에서 큰 힘을 맡겨놔도 안심이 됩니다. 하루쯤은 편안히 쉴 수 있고 쉬면서 만족을 느낄 수도 있는데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고 늘 생산적인 일에 자신을 끊임없이 투자하며 생애 도전하는 모습이 참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3년 내내 주산, 부기 급수 하나 못 타서 졸업을 하면서 인문계에 다녔어야 했다고 자신을 한탄하는 사람보다는 주어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다 이루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주위 사람에게 큰 힘을 기쁨과 신뢰를 줍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남다르게 머리가 좋아서 노력을 적게 해도 그 적은 노력으로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는 천재성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작게라도 성공을 이뤄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훈련해서 자기 한계를 넓혀 온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남들이 인정할 만큼 성실한 사람, 속이 꽉 찬 사람을 가까이하길 싫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머리가 좋고 잘생기고 재능이 많고 유머스러운 사람은 처음에 많은 사람이 호감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호감은 이미 실망으로 바뀌고 만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머리를 가졌다고 해도 아무리 그 사람이 남을 즐겁게 하는 유머스러움이 있다고 해도 성실성이 없어 보이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고 인연을 갖고 싶지 않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요즘 세상은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은 많은데 그것을 뒷받침해 줄 만한 성실성을 갖춘 사람이 없어서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진정한 문제는 너무 많이 배우려고만 하고 아는 것은 많은데 성실하게 노력하고 묵묵히 일하는 자세는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좀 실력이 부족하고 재능이 적더라도 성실하게 하루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계산이 정확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것에 비해 가슴은 냉랭하고 기계처럼 차가운 인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지식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식은 누가 가르쳐 주면 배울 수 있는 덕목이지만 정직함이나 성실함, 부지런함, 착한 마음은 억지로 가르쳐서 깨우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훈련시켜 가는 방법에는 없습니다.

  인생의 길목에서 문제를 만났을 때 실력이 모자라서 풀 수 없는 문제라면 남의 머리를 빌려서라도 풀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들이 지적인 능력보다는 그 사람의 성품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아무리 많은 지식도 도움이 되지 않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 자원해서 봉사하려는 마음, 남을 섬기는 자세, 이런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들이 먼저 배우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 쪽지 사무실에 찾아오는 발길들에게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분들 뒤로 꾸려가는 주변이 세상이 또 그만큼 아름답고 조화로우며 향기롭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희망이 필요하다> 김형모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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