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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진심으로 진짜 원하는 거니?"

by 책통지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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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갈망하며 준비해라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정말 네가 진심으로 진짜 원하는 거니?" 그럼 상대방은 곰곰 생각한답니다.
"정말이냐고? 내가 원하는 게 이건가? 다른 사람들의 압력에 못 이겨서, 아니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패배자가 될 것 같으니까 그런 건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이건가?" 제로 베이스 사고라는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습관에 젖어서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의무에 젖어서 하고 있는 일들을 백지상태로 놓고 돌아보는 것이랍니다. 

"내가 지금 이 일을 그만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면,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나이나 남들의 이목이나 체면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일까?"

 베데스다 연못(요 5:1-9) 가에서 38년간이나 병에 시달리며 좌절과 낙심 속에 있던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네가 정말로 낫기를 원하느냐?" 이게 무슨 가당치 않는 질문입니까? 누군들 이 상황에서 낫기를 원치 않겠어요?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강력하게 원치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 병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요." 그 말은 이런 거랍니다. "그래서 못 갔어요. 제 탓이 아니에요".

 정말 그런 걸까요? 다른 방법은 전혀 없었단 말인가요? 그렇게 환경이 뭔가 바뀌도록, 누군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때맞춰 적극적으로 나를 물속에 넣어주기까진 난 결코 나을 수 없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죠? 그 방법 외엔 도저히 길이 없다고 누가 정한 거죠? 그 말은 이렇게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래 살다 보니 적당히 구걸하면서 사는 것도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옳은 거지요. 어느새 그는 그렇게 못에 누워서 구걸하며 편하게 길들여진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38년이나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젠 기술이라고는 구걸하는 기술밖에 없는데! 38년이나 두고 보았지만 아무도 나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는데!

 이 상황에서 예수님의 질문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 인생을 철저히 바꾸려는 것인지, 그리고 그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려는지, 그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험하기 위하여 얼마나 일상의 것들과 그동안 익숙한 고정관념과 경험을 포기하려는지 묻고자 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그분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겁니다. 정말 원하니? 지금까지 부정적인 경험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렇게 꼭 낫기를 원하니? 지금까지 익숙해진 구걸과 동정과 의존의 방식을 뿌리치고 정말 그렇게 낳기를 원하니? 그렇게 되리라고 믿니? 맨날 남 탓 상황 탓 하다가 그게 좀 되는 거 같으면 행복하고 아니면 불행하고 그런 인생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간절히 갈망하니? 그래요, 어쩌면 믿음은 갈망의 정비례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는 진정으로 갈망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길들여져 있고 안주하고 있다' 이 사실부터 직면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나 자신의 행복보다 환경으로부터 얻는 안정을 원해요, 나는 나 자신의 행복보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시선을 의식해요. 나는 나 자신의 행복보다 무언가 더 성취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나 자신이 아닙니다. 그 무엇입니다!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철저하게이 사실 앞에 직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왜 굳이 나뉘어하냐고요? 그렇지 않다면 계속 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그것들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조건이 내게 충족되면 나는 행복하고 환경이 안 따라주면 불행하게 되겠지요. 그 사람이 내 곁에 있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느낀답니다. 내가 어떤 것에도 구애와 예속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족하면서 어디에도 기대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면, 또한 아무도 통제하거나 지배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족하지 않다면 나는 사람과 일을 대할 때 사심 없이 대할 수가 없게 되는 거라고 했습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 내 기분에 맞게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 사람과 일을 이용하고 통제하고 설득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의 모든 행위는 자기 욕망이기심의 투사일 뿐 인 것이라고 합니다. 근본이 다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갈망하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남 탓, 환경 탓, 시대 탓을 하지 않고 말입니다. 다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시고 예비하신 그때, 그럼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이 그때그때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랍니다.
좋은 태도와 자세, 그리고 언어와 위험을 가지고 실력을 갖추고 실망하지 않고 그때그때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성공과 실패의 다양한 환경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준비시키는 숨은 섭리가 있다고 합니다. 큰 그릇일수록 준비되는 시간도 길고 위기도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갈망하지 않으면 그 뜨거운 열정이 없으면 그만한 그릇이 준비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릴 적 요셉의 꿈은 그의 당돌함과 야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그 꿈만큼은 준비되기 전까지는 긴 세월과 실력과 훈련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긴 훈련 과정을 견디게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갈망이었다고 합니다. 갈망이 있으니 감옥에 갇혀서도 불평불만이나 하면서 허성세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해 나가지 않았느냐 했습니다.  술 관원이 감감 모소 식었을 때도 그것 때문에 어떻게든지 감옥에서 빨리 나가보려고 애를 쓰고 애태우고 원망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자기의 열정과 갈망을 품에 안고 실력을 키우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먼 타국의 이방인이었던  그가 외국어, 정치, 경제 등의 방면에서 최단기간에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 정치법들이 갇히는 감옥만큼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냐고 했습니다. 하늘은 돕는 자를 돕는다고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거기서 의미를 찾고 최선을 다하니까 감옥은 고통인 것 같지만  다른 큰 차원에서는 새로운 기회였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꿈을 통해 해석하는 일을 계속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살고 해석하는 훈련, 그러고 나서 비로소 때가 찼을 때, 왕이 불렀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꿈이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셨을까요? 요셉은 얼굴을 씻고 위엄을 갖추고 옷을 단정히 갈아입고 왕 앞에 갑니다. 드디어 요셉의 시대가 온 거라고 합니다. 갈망을 가지고 준비된 만큼 하나님의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잘 통과한 만큼이라고 했습니다.

 

 

 

 

참고문헌 <자유의 영성> 김화영, 연세대하교, 서울신학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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