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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해로운 수치심이 사람의 영혼에 악영향

by 책통지 2023.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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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호수 야경



해로운 수치심의 문제는 이를 가진 사람의 영혼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영혼이 무너져 내림'이라고 부르겠다. 우리는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다. 온전한 영혼이 되기 위해 우리는 일생을 통한 긴 여행에 들어가는 영적인 존재이다.

 

 영적 삶의 방식은 생활에 성장과 확장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되는 것은 그들에게 새로움과 창조성을 부여한다. 영적인 것은 존재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말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과 정면으로 대치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가 단지 존재함으로써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를 이미 이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본연의 모습이 될 수 있게 하는 기초가 된다.

 


비인간화

  인간은 해로운 수치심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과 분리된다는 사실을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자신과 분리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뭔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말과 같다. '다른 존재' 란 말은 스페인계 철학자인 오르테가 Y. 가셋이 비인간화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인간은 자신 안에 거해야 인간'이라 했다.

 온한 은 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인간이 자신 안에 살지 못한다면 동물처럼 항상 주의를 경계하며 비인간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해로운 수치심으로 인해 인간 이상이 되려고 하거나 그 이하가 되려는 것들은 모두 비인간적으로 행동이다.

 그들은 자기를 가리려고 거짓된 모습을 꾸며놓고는 이제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성취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온 일이기보다는 남을 위해 이루어지는 공연에 가깝다. 그들의 관심은 그들의 존재가 아닌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맞추어져 있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재함은 우리가 내적 삶의 풍요를 누리기 위한 기반이 된다.


 성경은 "천국이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로운 수치심에 묶인 사람들은 자신의 안에 열등하고 못났다고 여기는 고로 자신이 아닌 겉에서 행복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한다. 그 결과는 영혼의 파멸이다.


수치심이 반복됨으로 인한 절망


 해로운 수치심을 사람의 내면을 갉아먹는데 그 사람이 자신을 못나고 열등하고 결정 투성이라고 끊임없이 여기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은 무기력해지고 만다. 이는 "어떻게 날 바꿀 수 있겠어?" 라며 계속 수치에 수치를 거듭하는 성질이 수치심이 가진 성격이라 볼 수 있다. 수치심이 내면화되어 표출된 행동들이 당사자를 더욱 수치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수치심을 없애려고 시작한 행동이 중독으로까지 번져서 결국에는 수치심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치집에 자동적인 기능화

 

 일단 수치심이 내면화되면 이제는 외부에서 굳이 자극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내면에서 작동하게 된다. 이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상상하거나 내면에서 울려오는 부정적인 소리 때문이다.

 

 수치스러웠던 경험이 많을수록 그 사람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괴로워하는 일도 심해진다. 이런 일들은 너무도 절망적이라 수치심이 그를 죽게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인간으로서 가망 없는 못난 존재라 여기면 여길수록 자신을 변화시킬 가능성 또한 줄어든다.

 

 깊숙하게 내면화된 수치심은 영혼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수치심의 성격을 알고 그 존재를 짚어 가늠해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수치심을 정복할 힘을 갖춘 셈이다.

 

 

 

 

수치심의 치유/존 브래드쇼 지음/김홍찬, 고영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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