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 끝 무렵에 눈병에 걸렸다. 빛이라는 걸 거의 느끼지 못했다. 세상은 초콜릿 색깔의 어둠이었다.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중심성망막염이라는 백내장의 일종이었는데 눈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탓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소노아야코/김욱
꽤 심각한 수준의 선천성 근시 때문에 동공 표면이 커지러 거칠어질 때로 거칠어져 있어 수술을 한다고 해서 시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동안에도 시력이 마구 악화되었다.
급기야는 읽고 쓰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맡고 있던 연제도 모두 포기해야 했다. 하루 날을 잡아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혼자 있을 때면 수술이 실패한 후의 '처신'에 대해 고민했다. 마사지받는 것을 좋아해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니 맹인이 되면 마사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소설을 계속 쓰고 싶다는 미련도 남아 있었다.
눈이 안 보여도 얼마든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위로해 주는 분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말을 납득할 용기가 없었다.
소설은 수차례 반복해서 읽고 퇴고하는 가정을 거쳐 완성된다. 특히나 장편일 경우 이런 과정은 필수다.
살아서는 내 눈으로 세상 빛을 볼 수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졌다.
가뜩이나 폐쇄공포증이 있는데 시력까지 잃게 되면 생활은 어둠에 파묻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공포가 일상을 뒤덮어버렸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생각했다가 나답지 않게 무슨 짓인가, 우선 넘기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기적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성과가 좋았다.
염려했던 유리체 척출도 없었고, 다행히 시신경이 황반부에 별 이상이 없어 내 눈은 건강한 사람과 똑같은 시력을 회복했다.
지난 50년 동안 안경 없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안경을 쓰지 않고도 또렷이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생은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희망을 걸고 기다려야 한다. 죽음 직전에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내가 살아온 의미에 대한 해답은 정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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